강만금의 브레인영화관 ㅣ 이웃집에 신이 산다

인생의 남은 시간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까

브레인 56호
2016년 02월 11일 (목)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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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남은 시간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까

[영화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굳이 변화를 찾는다면 한 살 더 먹은 것, 날이 갈수록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지는 것 정도이려나.

여전히 늦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일어나 빈속에 물 한 잔을 털어 넣고, 만원 버스와 전철에 몸을 밀어 넣는다. 출근만 했을 뿐인데 이미 큰일을 치른 행색으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며 보낸다. 밤늦은 시각, 아침보다는 조금 덜 붐비는 전철과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온다. 쌓여있는 집안일은 못 본 채하고 하릴없는 척 TV를 보며 시간을 죽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침이 된다.

반복되는 생활의 연속이다. 혹자는 잠만 자는 집의 월세를 내기 위해 사는 것 같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멈출 수 없는 거대한 다람쥐 통에 들어간 것 같다고 한다. 아,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이었던가 자문해본다. 그 순간 낯선 번호로 온 문자메시지 알람에 정신이 든다. 


'당신의 남은 수명입니다.
5년 9개월 27일 4시간 32분 29초, 28초, 27초...'

순간 아무 생각도, 감정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5년 9개월여. 졸지에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당장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다. 고마운 사람, 보고 싶은 사람, 미안했던 사람들에게 그동안 '바쁘니까 나중에'라는 핑계로 미루고 미뤄왔던 이야기부터 전한다. 



당신의 인생에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를 알게 된다면, 당신의 삶은 달라질까?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남은 수명을 알게 된다면, 이 세상은 달라질까?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The Brand New Testament)'.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브뤼셀(벨기에)의 고층 아파트에 신(God)이 살고 있다. 신은 천지창조를 한 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온갖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인간'. 신은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인류에게 다양한 고통을 준다. 각종 자연재해와 대형사고는 물론, 이른바 '보편 짜증 유발의 법칙'이라 하여 욕조에 들어가면 전화벨이 울리는 것(법칙 2129호)과 같은 소소한 짜증도 모두 'made by GOD'이다. 

이런 신에게는 부인과 '에아'라 불리는 10살짜리 딸이 하나 있다. 하지만 신은 인간에게도 그러하듯, 부인과 딸에게는 그야말로 개차반. 하는 일이라고는 골방에 들어앉아 인간들 골탕먹이기뿐이면서 부인과 딸에게는 온갖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맞서고자 딸 에아는 먼저 집을 떠난 오빠(J.C. Jesus Christ, 예수)의 도움을 받아 아빠를 골탕먹일 방법을 찾아낸다. 바로 서재의 컴퓨터를 해킹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죽을 날짜를 문자로 전송하는 것. 그리고 에아는 집 세탁기 통로를 이용해 지상으로 내려와 자신과 함께 신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여섯 사도를 찾아 나선다. 

영화의 영어 제목 'The Brand New Testament'는 '완전히 새로운 신약성서'라는 뜻이다. 에아의 오빠 J.C.가 먼저 가출(?)해서 열두 사도와 함께 만든 '신약성서'에서 한 번 더 새로워진 신약성서라는 의미다. 

기독교 신자라면 다소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신이라 부르는 이의 심각한 인성 수준은 물론이오, 그에 반발하여 가출한 예수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에아의 여섯 사도 그림도 혹여 '불경스럽다'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선을 '신'이나 '종교'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영화는 무척이나 흥미로워진다. 에아가 가출 직전 아빠의 서재에서 황급히 꺼내 온 신상명세카드 속 여섯 사도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더욱 그러하다. 


1번 사도, 오렐리 복음
첫 번째 사도 '오렐리'는 누구나 감탄하는 미녀이지만 항상 혼자 있다. 어릴 적 지하철에서 사고로 한쪽 팔을 잃은 뒤, 자신감도 함께 잃어버렸다. 자신에게 남은 삶의 시간을 알게 된 뒤로도 평소같이 살아간다.

오렐리는 내면의 음악을 듣는 에아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알게 된다. 그녀의 음악은 바로 헨델의 '울게 하소서'. 그날 밤 꿈에서 발레를 하듯 춤을 추는 자신의 잃어버린 왼쪽 손을 보고 자신과 해원한다. 

2번 사도, 장 클로드 복음
'워커홀릭' 장 클로드는 어린 시절 위대한 모험가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현실에 의해 쪼그라들었다. 업무에 인생을 내어준 채 하루하루 버텨내는 알량한 삶. 출근길에 자신의 남은 수명을 알려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 즉시 서류 가방을 구겨 쓰레기통에 버리고 지나던 공원 벤치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장 클로드가 가진 내면의 노래는 라모의 '새들이 부르는 소리'. 공원에서 만난 한 마리 새가 이끄는 대로 장 클로드는 나이 들고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모험을 다시 시작한다. 

3번 사도, 성도착자 복음
세 번째 사도는 성도착자인 '마크'다. 그는 어린 시절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은 한 소녀를 본 뒤 '섹스'에 중독된다. 그리고 수명이 83일 남은 것을 알게 되자 전 재산을 퇴폐 업소에서 모두 탕진하고 죽기로 다짐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나서지만 어느 순간 의미 없음을 느낀다. 

마크의 노래는 퍼셀의 '오 고독이여'. 좋은 목소리로 돈을 벌어보라는 에아의 말에 따라 특기를 십분 발휘하여 성인 영화 성우로 나선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여성 성우와 사랑에 빠진다.


4번 사도, 암살자 복음
네 번째 사도는 자신을 '암살자'라 부르는 '프랑수아'. 그는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남은 시간을 알리는 문자를 받자마자 그는 총을 한 구 산다. 누군가를 쏘았을 때 그가 죽는다면 그의 수명이 다한 것이고, 혹 살아남는다면 아직 그의 수명이 남은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죽음의 집행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런 프랑수아에게 드리운 불행은 '사랑에 빠진 여자와 살 확률이 거의 없다(보편 짜증 유발의 법칙 1522호)'는 것. 평생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던 그는 우연히 오렐리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하며 자기 자신과도 깊은 해원을 하게 된다. 그의 노래는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5번 사도, 마르틴 복음
다섯 번째 사도는 부잣집 마나님 마르틴은 부족할 것 하나 없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지만, 진정한 사랑을 한 적은 없다. 그녀의 남편에게 남은 시간은 39년. 남편은 마르틴의 수명이 5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듣고 안도한다. 

바라는 것은 오직 사랑 하나인 그녀에게 나타난 사랑은 바로 서커스장에 있는 고릴라. 마르틴 내면의 노래는 서커스 노래로 유명한 율리우스 푸치크의 '검투사의 입장'이다. 

6번 사도, 윌리 복음
에아의 마지막 사도인 윌리는 나이는 어리지만 남은 시간은 54일 뿐이다. 항상 엄마의 과잉보호를 받아왔던 윌리는 자신의 수명을 알게 된 순간, 여자가 되기로 한다. 빨간 원피스에 하얀 구두를 신고 등교한다. 에아를 만나 자기 내면의 노래(샤를 트레네의 '바다')를 알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은 바다에서 맞이하기로 한다. 



이 여섯 사도는 오늘날을 사랑가는 우리들의 '결핍'을 대변한다. 자신감이 없는 오렐리, 삶의 목적을 잊은 채 살아가는 장 클로드, 중독에 갇혀버린 마크, 죽음이라는 자극에 빠져버린 프랑수아, 물질만 있을 뿐 진짜 사랑은 잃어버린 마르틴, 마지막으로 주체성을 억압당한 채 살아가는 윌리. 

에아는 그들을 만나 내면의 음악을 찾아주고 함께한다. 그 과정에서 여섯 사도는 자신이 잃어버렸던, 혹은 누군가에 의해 잊혔던 자신의 가치를 찾게 된다.

이들의 변화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그들의 삶에 남은 시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그저 관성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것, 해야 하는 것, 누군가가 시킨 것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언제 끝날 인생인지 알 수 없다는 모호함을 내세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항상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을 우선하고 마는 우를 범하며 인생을 소비해왔다.

영화에서는 모든 인류가 자기에게 남은 인생을 알게 되면서 세상이 바뀐다. 삶에 의미를 찾기 위해 회사 대신 무언가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출근 거부자가 급증한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화제에 오른다. '신의 이름으로'를 외치며 온갖 전쟁을 일삼아왔던 이들이 교전을 중단한다. 

그러한 인간들의 갈등과 반목을 즐겨왔던 신은 사람들이 전쟁을 멈추고 자신의 의미를 찾으려는 모습들을 뉴스로 보고 이렇게 말한다. 

"인간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내게 꼼짝 못 하는 거야!"



'하우스 푸어(house poor)'라는 말이 화제였다. 집을 소유하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로 인한 이자 부담으로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아무리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 푸어(working poor)', 자녀 교육비로 대부분의 소득을 지출하는 '에듀 푸어(edu poor)' 등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가난뱅이' 하나를 추가하고자 한다. 바로 '타임 푸어(time poor)'다. 이는 워싱턴포스트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브릿짓 슐트가 쓴 책 《타임푸어》에서 탄생한 신조어다. 언제나 해야 하는 일에 쫓긴 채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이 책에 따르면 타임푸어는 '양가감정(ambivalence)'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한정된 주어진 시간 내에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남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 사이에서 반대되는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양가감정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시간에 그 어떤 경험이나 감정도 제대로 내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가감정을 해결하는 데 탁월한 방법이 바로 영화 속 인물들처럼 내 인생에 남은 시간을 아는 것이다.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이 5년 혹은 10년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의 '시간 시야'는 좁아진다. 즉, 내게 진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무엇이 덜 중요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얼마나 '나'로서 살아가고 있을까. 어김없이 찾아온 새해를 맞이하며, 지금 이 순간 오롯이 나 자신으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본다. 


글. 강만금 기자 sierra_leon@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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