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통섭과 뇌

브레인 Vol.11

두뇌 리더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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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 기자 |입력 2010년 12월 29일 (수)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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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통섭’이란 화두를 던진 사람. 서울대에서 자리를 옮겨 이화여대에 에코학부란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한국생태학회 회장을 역임 중이며 최근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의 집필, 강연, 시민사회 활동 등을 펼치며 그야말로 ‘통섭’의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는 최재천 교수를 ‘통섭원’의 공간이 함께한 연구실에서 만났다.

현 이화여자대학교 자연과학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최재천


‘통섭’이란 단어는 2005년 최재천 교수가 자신의 스승인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저서《Consilience》를 번역하면서 국내에 처음 소개한 것으로,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지식의 대통합’을 의미하는 통섭이 이제 학계를 넘어 정재계 등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통섭의 견지에서 보면, 다양성과 포괄적인 면에서 뇌가 통섭과 많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통섭 강의를 하면서 가장 통섭적인 학문적인 노력의 예로 자주 언급하는 것이 바로 ‘뇌’입니다. 저명한 뇌과학자들 앞에서 얘기하면 불편해하는 부분도 있지만, 뇌의 진화를 생각하고 연구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뇌과학의 연구가 다른 분야에 비해 그다지 최첨단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뇌영상을 보고 기능을 밝혀가고 있지만 실제로는 뇌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을 직접적으로 보고 있지 않거든요. 그만큼 뇌가  아직은 신비와 미지의 영역인 셈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기존 연구를 따라가기보다는 새로운 방향 접근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예를 들면, fMRI 연구를 통해 뇌영상을 선명히 보려만 할 것이 아니라 mMRI(mobile MRI)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나 합니다. 현재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의 뇌영상을 찍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랑하는 사람들의 뇌를 찍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메커니즘이 되겠지요.

교수님께서는 ‘생각하는 뇌’가 아닌 ‘설명하는 뇌’를 말씀하시는데 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동물의 뇌를 보고 있는 사람인데, ‘생각의 뇌’를 가지고 동물의 뇌와 인간의 뇌가 다르다고 생각하던 학설들이 지금은 무참히 깨어졌거든요. 그들도 자존심 상하는 행동이 있고, 자기가 불공평한 대접을 받았을 때 의사표현을 하는 등 ‘생각하는 뇌’의 견지에서 보면 별반 차이점이 없어집니다.

더불어 유전자 과학의 발달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와의 유전자 차이가 불과 1% 남짓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인간과 침팬지의 뇌는 형태 면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기능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거든요. 이러한 것들을 구별하기에 기존의  ‘생각의 뇌’로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지요.

《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란 책을 함께 펴낸 문화평론가 도정일 선생님과 대담하는 과정에서 ‘구라’라는 표현을 끄집어낸 적이 있는데, ‘구라’는 사실 표준어거든요. 그때 선생님께 ‘동물이 구라 푸는 거 보신 적이 있나요?’라고 물었는데요.

어느 침팬지가 밤새 구라 풀고 하지는 않거든요. 구라를 푸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속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어떤 뇌를 가지고 있기에 구라를 풀까. 구라는 하나의 표현이고 곧 시와 소설을 쓰고, 심지어 신화를 창조할 수 있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설명할 줄 안다는 겁니다. 모든 걸 만들어내고 설명하는 것. 침팬지의 뇌에 있지 않는 것. 저는 거기에 결정적 차이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어쨌든 인간은 지구상에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와는 구분되는 특별함이 있어 보입니다. ‘Who am I’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존재에 대한 성찰, 근원에 대한 물음을 갖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인간의 뇌만이 갖는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 생각에는 100% 동의하기 어렵네요. 10년을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아온 침팬지의 머릿속에 과연 그런 것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10년 넘게 기른 개의 눈 속에 그간의 세월을 관조하는 뭔가가 정말 없을까요. 개도 그윽한 눈빛이 있거든요. 현재의 뇌과학 기술로는 측정하기 어렵지만요.

다만 차이는, 개가 10년 넘게 살면서 기가 막힌 철학자가 되었다 해도 철학을 설명할 수 없다는 거죠. 하지만 나의 할아버지는 그것을 설명할 수가 있지요. 동물도 깊은 철학이 있을 순 있어도 설명은 못하는 거죠. 그게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잘못하면 노엄 촘스키 선생님과도 부딪힐 수 있는 문제인데요. 한 번도 한국에 온 적이 없는노엄 촘스키 선생님을 일전에 한번 뵙고 얘기를 나누었는데, 제게 어떤 연구를 하느냐고 물으시기에 ‘까치의 언어를 연구합니다’라고 했더니 ‘까치가 무슨 언어가 있느냐. 까치에게 독백을 하느냐’라고 반문하면서 논쟁이 붙었지요.

노엄 촘스키 선생님은 ‘언어는 자기가 자기에게 얘기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라는 게 당신의 기본 지론인데, 많이 화나셨던 거지요. 저는 까치도 뭔가 관조하는 능력이 있을 텐데, 표현하는 면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초기에는 개미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셨고, 지금은 다양한 개체로 확대되었는데요. 궁금한 것은 자연 속에서 어떠한 법칙을 찾고 지혜를 얻으시는데, 그것에 비추어 오늘날 인류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점이 인간의 뇌의 활용 문제인지에 대해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매우 어려운 질문이군요. 먼저 하나의 전제를 깔고 이야기해야 할 듯합니다. 인간의 뇌는 우선 진화 면에서 역사가 매우 짧습니다. 인간의 뇌가 기가 막힌 진화의 산물임에 틀림없지만, 이 진화가 성공적이냐 아니냐는 두고 봐야겠지요.

현재 인간의 뇌가 갖는 안 좋은 속성들, 마약에 빠진다거나 하는 등의 부정적 기능도 갖고 있거든요. 이것이 혹시 인간의 뇌가 진화해가면서 자멸의 수순을 밟고 있는 건 아닌지는 저도 확신할 수 없지만요. 중요한 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급속도로 발전해왔다는 겁니다. 진화는 최선이 아니라 최적의 프로세스거든요. 진화는 주어진 상황에서 그 중 제일 나은 것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인간의 뇌를 잘못 들여다보면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뇌는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그것을 수용하고 적응하기 위해서 최적의 변화를 이루어온 존재거든요. 비만이 대표적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과거 수렵 채취하던 시절에는 인간의 뇌는 많은 활동량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움직이질 않거든요.

엄청난 정보화 사회가 지속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뇌 입장에서는 다소 급격한 변화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가질 못하고 있는 거지요. 너무나 급격한 진화에 따라 뇌의 통제를 우리의 몸이 벗어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릴 수는 없겠지요. 그러한 인간의 뇌의 부정적 속성들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문제점들을 자각하는 기능도 동시에 갖고 있으니까요. 위기를 감지하고 또 그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니까. 뇌에서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겠지요.

교육에서도 뇌에 대한 관심과 적용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뇌를 잘 이해하면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대신 너무 지나치면 좋지 않겠지요. 예를 들어 망아지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걷습니다. 이미 어미 뱃속에서 걸을 수 있는 뇌기능을 갖고 태어나는 거지요. 왜냐하면 그렇게 태어나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수렵 채취 시절부터 새끼에 대한 탁월한 보호 기능이 이어져온 것인지, 어쨌든 인간의 태아는 성인 뇌 기능의 3분의 1도 채 지니고 태어나질 못하지요.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나도 진화적으로 생명의 위협 없이 존재해온 역사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태아는 그야말로 말랑말랑한 뇌를 갖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3년간 엄청난 뇌 회로가 형성되지요. 제가 지금도 학부모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는데, 뱃속 ‘태교’만 얘기하지 말고 ‘평생태교’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뇌는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이러한 부분은 뇌에 관심을 갖고 뇌를 알게 되면 도움이 되는 것이겠지요.

《브레인》은 학부모, 교사와 학생 독자가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독자들께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재 우리 아이들의 브레인에 너무나 과도한 정보 처리 활동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관조와 여유를 가질 수조차 없을 정도로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사회성 발달 같은 것이 형성될 리 만무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게임기 간의 관계만 이루어지는, 뇌세포 간의 네트워크 이상으로 다른 뇌와의 네트워크가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갈수록 인성이 결여되고 자기만 바라보지요. 나를 내세우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좀 눈치보고 살자고 얘기합니다. 제대로 눈치를 봐야 합니다. 나의 행동이 남에게 어떤 결과를 만들지 눈치를 봐야지요. 그게 뇌를 잘 쓰는 것입니다.

일전에 촛불집회 할 때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사람들을 색출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제가 요즘은 작심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다닙니다. 바로 문과·이과가 없어진다는 얘기를 합니다.

지금이 어떠한 시대인데 아직도 문과·이과를 나누어놓고 한창 발달할 아이들의 브레인을 상자 속에 가두어놓느냐는 겁니다.

최재천 현 이화여자대학교 자연과학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2006년 한국생태학회 회장
2007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2008년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
《지식의 통섭》
《생명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외 다수


우리 아이들의 브레인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교육체제가 필요합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이에요. 정해진 틀 속에 끼워 맞추는 식의 교육. 다양한 선택을 하게끔 일찍부터 보장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다양성이 필요합니다. 현재 교육제도가 우리 아이들의 브레인을 극대화하질 못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나이면 창의성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데 지금 모두를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이 같은 제도가 어떻게 바람직하다 할 수 있습니까.

제 연구실의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기초학문과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쌓고 사회에 나가라고. 이제는 90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인데, 대학 4년 동안 했던 것으로 전체 인생에 뭔가 커다란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요.

인터뷰 내내 학자의 겸손과 배려가 묻어난 시간, 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자 그가 보이는 일련의 왕성한 사회적 활동의 근원이 자연생태계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인간사회에 투영하려는 학자의 사명과 책임감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의 저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가 가슴 깊게 와 닿는 시간이었다. 

글·장래혁
editor@brainmedia.co.kr | 사진·김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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