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감정 너머에 있다

브레인 Vol. 19

*뇌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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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할 수는 있어도 첫눈에 정이 들 수는 없다. 그러니 열정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성급한 판단은 일단 보류해야 마땅하다. 사랑은 그저 단순한 열정이나 생리적 반응이 아니다.

얼마 전 지인들과 나눈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워낙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다 보니 각자 자신의 사랑관에서부터 섹스 라이프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대화가 오갔는데, 우리 중 유일하게 결혼한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젠 마누라가 여자로 보이지 않아. 벌써 일 년 반째 섹스리스로 살고 있다니까.”


일본 유학 시절 일 년여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고, 가장 사랑한다고 느낀 순간 결혼한 것을 늘 자랑하던 친구다.


“아니, 와이프랑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니면서 왜 섹스리스로 살아? 사랑도 꾸준히 노력해야 유지되는 거 아냐?”


순진하게 그렇게 말했다가 남의 부부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오지랖 넓은 처자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남자가 주장하길, 결혼 6~7년차 부부가 신혼 초기 성생활을 유지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바로 사랑에도 유효 기간이 있다는 설.


요즘처럼 사랑이 한낱 저잣거리의 인스턴트식품 취급을 받게 된 데는 과학자들의 입김이 꽤나 집요하게 작용했다. 몰인정한 현대 과학은 사랑이 단지 일시적 호르몬 분비 결과 일어나는 화학 작용이라고 못 박고, 이 호르몬이 계속 분비되면 결국 대뇌에 항체가 생성돼 더 이상 화학 물질이 생성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하여 사랑의 유효 기간은 18개월, 길어야 30개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미국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는 사랑에 빠진 뇌를 MRI로 찍어보니 강박증을 앓고 있는 뇌와 유사하더라며, 사랑에 빠진 뇌에 강박증 치료 약물을 투여하면 사랑의 감정도 그만 사그라져 버린다고까지 말했다. 사랑이 약물로 조절할 수 있는 호르몬 작용일 뿐이라는 얘기인데, 과연 그럴까? 정말 사랑이 3년 만에 끝나는 화학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면 수십 년 고락을 같이한 지구상의 수많은 부부·커플·연인 관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랑은 열정이 아니다


흔히 과학자들이 말하는 사랑의 유효 기간은 물리적인 호르몬 분비 기간, 즉 열정이 뇌를 사로잡는 시기를 의미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 보면 보고 싶고, 온몸에 전기가 흐르듯 짜릿한 느낌에 사로잡히고, 밤새도록 전화기에 매달려도 피곤한 줄 모르는 열정이 지속되는 기간 말이다.


이 시기에는 눈에 콩깍지를 씌우는 페닐에틸아민,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주는 도파민, 이유 없이 히죽히죽 웃게 만드는 엔도르핀, 육체적 쾌감을 주는 노르에피네프린이 왕성하게 분비돼 말 그대로 사랑에 폭 빠진 상태가 된다. 과학적 의미에서 사랑은 이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물론 사랑의 초기 단계는 열정(passion)에 많은 부분을 기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단 사랑하는 관계가 정립되고 나면 열정이 다른 요소에 조금씩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다. 신뢰나 연민, 책임감과 친밀감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렇듯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 은밀하고 따스한 감정이 공존하면서 작용하는 포괄적인 개념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랭커스터 대학 캐리 쿠퍼 교수는 ‘사랑은 그저 단순한 열정이나 생리적 반응이 아니다. 관계 초반에는 그럴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사랑은 포용이다. 최악의 것도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지지해주는 것, 자신의 몸을 던져 상대방을 구하는 것,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하고 보살피는 것, 결국에 둘은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사랑이 이만큼의 무게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다. 첫눈에 반할 수는 있어도 첫눈에 정이 들 수는 없다. 그러니 열정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성급한 판단은 일단 보류해야 마땅하다.


미국 뉴욕주립 대학 스토니 브룩 캠퍼스 심리학과 아서 애런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밝힌 결혼 21년차 커플들의 뇌 영상을 찍어본 결과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1년차 커플의 뇌와 거의 동일했다고 한다. 더 좋은 소식은 사랑의 유효 기간을 늘려주는 호르몬도 존재한다는 것. 남자는 바소프레신이,


여자는 옥시토신이 이런 구실을 한다. 서로 상대의 신뢰에 영향을 끼치는 이 호르몬들은 실제로 친밀감과 모성애를 일으키고(옥시토신) 바람기를 잡아주는 기능(바소프레신)이 있다. 다행인 것은 이 호르몬이 급격하게 분비되다 어느 순간 찔끔찔끔 말라버리는 사랑 호르몬과는 달리 평생 동안 꾸준히 분비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사랑에 유효 기간이 있다는 학설을 철석같이 믿고 섣부른 판단으로 사랑을 놓치거나 단편적인 잣대로 사랑을 재단하지 말 일이다. 깊고 지긋한 사랑은 열정적인 사랑이 차츰 시들어갈 즈음, 오래 믿고 기다려온 사람들에게만 비로소 주어지는 특권일 테니 말이다.


글·전채연
ccyy74@brai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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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수 (2)
  • 전덕만 2014-01-31 오전 09:49:32 댓글쓰기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밝힌 결혼 21년차 커플들의 뇌 영상을 찍어본 결과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1년차 커플의 뇌와 거의 동일했다고 한다.
    더 좋은 소식은 사랑의 유효 기간을 늘려주는 호르몬도 존재한다는 것. 남자는 바소프레신이, 여자는 옥시토신이 이런 구실을 한다.
    서로 상대의 신뢰에 영향을 끼치는 이 호르몬들은 실제로 친밀감과 모성애를 일으키고(옥시토신) 바람기를 잡아주는 기능(바소프레신)이 있다.
    다행인 것은 이 호르몬이 급격하게 분비되다 어느 순간 찔끔찔끔 말라버리는 사랑 호르몬과는 달리 평생 동안 꾸준히 분비된다는 사실이다.^^
  • 전덕만 2013-11-15 오후 04:30:41 댓글쓰기
    궁극적으로 사랑은 포용이다. 최악의 것도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지지해주는 것, 자신의 몸을 던져 상대방을 구하는 것,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하고 보살피는 것, 결국에 둘은 하나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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