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의 정체

브레인 Vol. 15

재미있는 두뇌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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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 기자 |입력 2010년 12월 21일 (화)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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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은 인체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본능 시스템 중의 하나다. 음식을 맛보며 몸에 탈이 없을 것인지 판단하고, 삼킬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맛에 대한 감각을 생존 수준을 넘어 쾌감에 연결되도록 발달시켰다. 덕분에 우리는 맛의 무한한 즐거움에 빠져들게 됐다. 하지만 미각의 발달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다. 미식가가 있는가 하면, 특정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고민에 빠지거나 아플 땐 일시적으로 미각을 잃기도 한다. 미각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미각’을 초대했다. 

바쁠 텐데,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진짜 바쁘다. 입 안에 음식물이 없을 때도 미각을 느끼게 하는 미뢰 세포 5천여 개는 입 안에서 늘 어딘가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온 김에 뇌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미각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뇌는 보이지 않게 많은 애를 쓰고 있다. 


미각의 즐거움과 뇌의 생존이 어떻게 연결되었다는 말인지?
미각이라고 하면 식도락을 연상하기 쉽지만 뇌는 여유롭게 맛만 즐기고 있지는 않다. 뇌는 항상 음식의 위험도를 판단한다. 맛 중에서 가장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쓴맛’이다. 선사시대 인류에게 독초는 곧 죽음이었기 때문에 쓴맛이 나면 일단 위험 신호로 받아들인다.

한편 뇌는 단맛을 내는 과일처럼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선호하도록 발달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단맛을 편애하는 바람에 영양 상태가 불균형해졌고, 오히려 쓴 약을 먹어 건강을 돌봐야 할 형편이 됐다.


미각에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네 종류가 있다. 이런 감각이 단순히 음식의 맛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신맛은 음식의 부패를, 쓴맛은 음식의 독성을 감지하는 감각이다. 미각은 기본적으로 몸에 해로운 성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감각인 것이다. 뇌의 미각중추는 맛을 판단할 뿐 아니라 미각에 대한 과거의 기억이나 경험을 순식간에 출력해낸다. 이를 곧바로 현재의 미각과 대조해서 종합적 판단을 내린다.

미각중추로 들어온 정보는 뇌 속의 막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조회되고, 이윽고 그 독특한 맛을 인식하게 된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서 맛이 ‘이상한’ 경우 뇌는 위험하다는 적신호를 보낸다. 무엇인가를 먹을 때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전혀 의식하지 않지만, 뇌는 ‘맛’을 통해 생존 본능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뇌가 저절로 움직이니 안심이다. 그럼, 이제 음식을 먹을 때 맛을 느끼는 과정을 말해달라.
미각은 3천~1만 개의 맛을 담당하는 기관인 미뢰라고 하는 맛봉오리(taste bud)에서 느끼는 감각이다. 혀를 내밀어보면 표면에 작은 돌기들이 있는데 미뢰는 그 돌기 속에 있다. 음식물이 입 안으로 들어오면 미뢰 속에 있는 미세포에서 맛의 정보를 전기신호로 바꿔 미각신경을 통해 대뇌피질의 미각중추로 보낸다. 미세포는 외부 환경에 노출되어 있어 쉽게 손상되지만 계속 재생된다. 미세포는 감각 적응이 빠른 편이어서 자극을 받은 후 3~5초가 지나면 부분적으로 적응이 일어나 느껴지는 맛의 강도가 처음보다 감소하며, 1~5분이 지나면 수용체가 자극에 완전히 적응하여 더 이상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참고로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다. 뇌는 매운맛을 통증 세포를 통해 느낀다. 매운 음식을 먹으며 시원하고 맛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뇌가 통증에 대응하기 위해 자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얼얼한 혀의 통증을 잊고 확 깨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요즘 음식을 먹어도 맛을 잘 모르겠다. 혹시 맛을 느끼지 못하는 무미각증 아닌가?
맛에 대한 감각이 둔해졌다고 느낀다면 소금, 식초, 블랙커피, 설탕의 맛을 구분할 수 있는지 실험해보라. 이들 맛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면 무미각증은 아니다. 하지만 맛을 구분하기 어려우면 이비인후과 등을 찾아서 원인을 밝히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입 안에 염증이 생겼거나, 입이나 귀를 수술할 때 신경을 다친 경우 무미각증이 발생할 수 있다. 또 뇌출혈이나 당뇨병의 합병증이 무미각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밖에도 미각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무미각증이 아니라고 해도 현대인은 미각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는 사람은 미각이 많이 지쳐 있기 십상이다. 이럴 땐 열흘간만 싱겁게 먹어보라. 미각은 열흘만 쉬게 해줘도 정상 상태를 되찾는다. 또 화학조미료와 식품첨가물이 든 음식도 미각을 상하게 한다. 요즘 사람들이 순수한 맛에 대한 섬세한 미각을 잃어가고 있어서 안타깝다.


화학조미료와 식품첨가물에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는 방법은?
일단 주방에 있는 화학조미료를 모두 없애고, 조미료의 감칠맛을 대신할 천연조미료를 만들어보라. 다시마, 멸치, 새우, 버섯 등의 재료를 가루로 만들어 음식 만들 때 사용하면 풍부한 감칠맛을 낸다. 화학조미료(MSG)의 감칠맛은 원래 다시마에서 추출한 글루탐산에서 시작되었다. 이 맛을 흉내 내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L-글루탐산나트륨이다. 이 성분은 혀에 강렬하고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겨서 지속적으로 찾게 만든다. 그러나 MSG를 과다 복용하면 신경계를 교란시키고 비만을 초래하며 치매를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의 식품 문화 탓에 식품첨가물을 섭취하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식품을 구입할 때 성분표를 읽는 습관을 들여 되도록 첨가물이 적게 들어간 제품, 또는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제품을 구입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라.


그 밖에 미각을 잘 관리하는 방법은?
맛을 잘 느끼려면 우선 입 안을 청결히 해야 한다. 미각은 혀만이 아니라 구강, 인두, 후두와도 관련이 있다. 여기에도 미뢰가 있기 때문이다. 양치질을 자주 하면 노화로 인해 미각 기능이 저하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대한구강내과학회지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사람들의 미각에 대해 조사한 결과 하루에 2회 이상 양치질을 하는 사람이 2회 미만인 사람보다 미각 기능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화하면서 미각이 둔해지는 것은 혀의 표면에 분포한 미뢰 세포 수가 30~50퍼센트 정도 줄어들고 구조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짠맛을 느끼는 감각은 청년기의 25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진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 음식을 짜게 먹기 쉬운데, 짜게 먹으면 건강에 해로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글·김보희 kakai@brainmedia.co.kr | 일러스트레이션·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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