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대답할 수 없는 몇가지

뇌 2004년 2월호

두뇌 쑥쑥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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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교육 | 기자 |입력 2010년 12월 08일 (수)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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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 둘을 기르면서 자주 생각나는 책 구절이 있다. 〈천상의 예언〉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주인공과 여자친구가 어떤 모녀를 만난다. 마흔 살 전후의 엄마와 대여섯 살 정도의 어린 딸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듯이 당연하게 여자친구는 엄마에게 딸의 나이를 묻는다. “마레타는 몇 살인가요?”

현실이나 소설에서 대부분의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딸의 나이를 가르쳐 주는 것과 달리 그 엄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저 아이를 이곳에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약 저 아이가 어른이었다면 당신은 저 아이에게 직접 물었을 겁니다.”

〈천상의 예언〉이라는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미 큰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인간 영혼의 진화를 주제로 한 소설 자체도 무척 감동적이었지만, 특히 이 장면은 나에겐 충격이었다. 대화를 할 때 특히 아이들에 대해 대화할 때 그들을 대화 속에 포함시켜야 하며, 모든 상황을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그대로 말하려고 노력한다는 그 엄마의 가치관은 그대로 내머리 속에 와서 박혔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생각도 났다. 어른들이 대화할 때 뭔가 궁금하거나 혹은 나도 잘 아는 얘기라서 한마디 하면 늘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 “어른들 얘기하는 데 끼어드는 거 아니다” 아이였던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났고, 내가 어른이 되면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는 했다.

그래서 아이 인격을 존중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모든 상황을 될 수 있으면 솔직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주 어린 아이라도 어른이 자신을 존중하며 자신에게만 집중해 얘기할 때 서로 교감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늘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나 둘째가 태어나 남자아이 둘을 기르는 엄마가 되고부터는 현실이 만만찮았다.

화장실에서 생긴 일

우리 집 화장실은 둘째 성영이가 아주 좋아하는 놀이터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손으로 물줄기를 만지는 걸 좋아하는 성영이가 한참 물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때, 소변보러 들어갔던 남편이 그 장면을 보았다. 물을 아껴야 된다며 아무 생각 없이 수도를 꺼버리자 순간 화가난 성영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또 다른 물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말릴 사이도 없이 자기아빠의 소변줄기에 손을 갖다대는 성영이를 본 남편의 비명이 울렸다. 큰아이 성운이와 내가 놀라서 뛰어가자 덩달아 놀란 성영이는 얼른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다음순간 성영이를 제외한 우리식구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성영이가 그 손을 입에 대고 쭉쭉 빨아 먹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부부는 살짝 이성을 잃고 만다. 남편 입에서는 바로 “니가 인간이가? 강아지가?”하는 소리가 나오고, 난 아이의 인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세면대로 끌고 가서 손부터 씻긴다. 그리고 습관적인 말들이 튀어 나온다. “내가 정말 미치겠네. 이게 뭐야? 응!”

말이 늦은 성영이가 어느 날 “미치.미치”라는 말을 하고 다녀서 뜨끔했었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습관적인 “미치겠네”를 성영이가 따라하는 것이다. 정말 고쳐야지 생각하면서도 이런 순간에는 통제가 안 된다.

사태가 수습이 되고 나서야 생각한다. 그럴때 이랬으면 어떨까. 우선 성영이 손을 잡고 자상한 목소리로 아이가 알아듣게 설명을 한다. “성영아 쉬야는 물이랑 달라. 거기다 손을 대면 안돼요. 그리고 손에 묻은 거 아무거나 빨아 먹으면 성영이 배 아파요. 자! 엄마랑 손 씻자” 그리고 나서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모습으로 차분한 노래까지 불러주며 손을 씻겨준다…
내가 되고자 하는 엄마의 모습은 이렇게 뒷북을 칠 때가 많다.

호기심대왕의 끊임없는 질문공격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싶어 하는 엄마로서 힘든 시련중의 하나는 아이들의 질문 세례다. 특히 성운이는 호기심대왕이라고 할 만큼 궁금한 게 많다보니 질문이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다.

일상에서 내 작은 소원중의 하나는 화장실에서 문을 닫고 편안하게 볼일을 보는 것이다. 성영이는 내가 화장실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기 때문에 일단 문을 활짝 열어놓고 일을 봐야만 한다. 그러면 성영이는 같이 화장실에 들어와 비데버튼을 마구 눌러댄다. 멍청히 딴생각 하다가 펄쩍 뛸 만큼 뜨거운 물세례를 받은 적도 있다. 비데버튼 누르기에 싫증이 나면 자신의 젖병을 들고 내 무릎에 올라앉는다. 그 다음에는 성운이의 질문공세가 쏟아진다. 왜냐하면 자신의 질문을 뿌리칠만한 큰 명분 없이 이렇게 부동자세로 앉아있는 엄마를 대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가득 차 두 눈을 반짝이며 성운이가 다가오는 순간 난 긴장하기 시작한다. 오늘의 질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엄마, 원숭이랑 올빼미랑 싸우면 누가 이겨?”
“응. 엄마도 잘 몰라.”
“엄마, 팬티가 영어로 빤스야?”
“아냐. 팬티가 영어야.”
“그럼 빤스는 뭐야?”
“글쎄, 일본사람들이 팬티를 그렇게 발음한 거 같은데 정확한 건 몰라. 엄마도.”
“엄만 왜 그렇게 모르는 게 많아?”
“……몰라. 왜 그런지”
“엄마 나한테 불만 있어?”
“왜?”
“그렇게 화난 얼굴로 쳐다보니까.”

이쯤되면 저리가라고 소리지를 때가 됐다는 걸 성운이도 알고 나도 안다. 너도 화장실 변기에 성영이 안고 앉아서 질문고문 받아봐라는 말을 간신히 삼키는데 눈치 빠른 성운이는 엄마표정에서 위기감을 느꼈는지 슬쩍 사라진다. 이번엔 성영이가 엄마에게 뭔가를 계속 말한다. “뭐그그 뚜뗑 뭐그”……계속 뭐그그 뚜뗑 뭐그만 반복하는 걸 보면 무슨 의미가 있는 말 같은데 도저히 해석이 안된다. 그 말을 계속 반복하는 성영이를 보면서도 도와줄 수 없는 내 마음은 안타깝다.

〈천상의 예언〉에서 그 엄마는 아이들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 어린아이들이 흔히 묻는 질문을 하면 진지하게 대답하라. 어른들이 약간의 재미를 즐기기 위해 혹은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너무 복잡한 내용이라 생각하고 즉흥적으로 가짜 대답을 만들어 내는 건 옳지 않다. 진실은 항상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표현될 수 있다. 충분히 생각만 한다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이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이 있다. 질문이 황당해서 그럴 때도 있지만, 너무나 진지한 질문이어서 쉽게 대답을 못한 경우도 있었다.

황금짹짹이가 가르쳐 주다

일주일에 한번씩 성운이는 뇌호흡 노원센타에서 한시간씩 뇌호흡 수업을 받는다. 겨울이라 저녁수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언제나 캄캄하다. 차가 신호등에 걸려 기다리는데, 바로 앞에 그림 같은 둥근달이 떠 있었다. 성운이에게 달을 보라고 했더니, 탄성을 지르며 보름달에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면서 소원을 한 가지씩 빌자고 한다.

나도 소원을 빌었다. 잠시 후 성운이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더니 자신감을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했다. 자기는 싸움도 못하고 힘도 없어서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다. 순간 좀 놀랐다. 언제나 나서기 좋아하고 말하기 좋아하고 밝고 건강해서 자신감이 넘치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사이 성운이는 자신과 남을 비교하며 부정적인 피해의식을 갖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자신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성운이의 질문에 난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대신에 황금짹짹이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뇌호흡을 오래한 아이들은 자신의 머리에 자신만의 어떤 존재를 기르는 상상수련을 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뇌 속의 자신과 대화를 해서 스스로 답을 알아내는 것이다. 성운이는 머릿속에 새를 기르는데 새의 이름은 ‘황금짹짹이’다. 황금짹짹이는 성운이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을 때 무조건적인 부모의 조언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훈련을 시켜주는 존재다.

황금짹짹이에게 자신감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본 성운이는 쉽게 답을 들을 수 없었는지 한참을 거실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 마치 어른들이 마음을 비우고 걷기명상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그러더니 답을 들었다고 했다. 답은 간단했다

엄마말씀 잘 듣고 책을 지금보다 백배는 많이 읽으면 된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답은 아니었지만 성운이는 나름대로 그 답을 이해하는 듯 했다. 엄마 말씀 잘 들으라고 했다는 말에, 성운이에게 꾸준히 푸쉬업을 시켜서 체력부터 길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보니 황금짹짹이 말이 맞나보다.

성운이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궁금한 일

성운이의 이어지는 질문공세에 지친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성운아 넌 세상에서 제일 궁금한 게 뭐야. 성운이는 바닷속에 어떤 물고기들이 사는지가 제일 궁금하다고 했다. 그 다음 궁금한 건 뭐냐고 했더니 이런 말을 한다.

“난 내가 어른이 됐을 때 말이야. 내 아이가 질문을 자꾸 하면 화를 낼 지가 정말 궁금해. 왜냐하면 엄마가 나한테 화내면 난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어른이 되면 그럴지 안 그럴지 궁금해.”

퍽이나 찔리는 말이었다. 엄마도 어려서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며 엄마도 노력하겠다고 했더니 하나밖에 나지 않은 앞니를 한껏 드러내고 히히 웃는다.

〈천상의 예언〉에 나오는 나의 이상형 엄마가 했던 말을 되새겨 본다.

항상 진지한 관심을 받는 아이는 허세를 부리거나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고. 어른들에게 충분한 사랑의 에너지를 공급받은 아이는 나중에 우주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훨씬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글|박선자
방송작가. <테마게임>,<남자셋여자셋>,<메디컬센터>,<우리집>등을 썼음. 성운,성영 두 남자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기르며 일을 계속했고 뇌호흡 수련 만 4년차. 네가족이 모두 단월드 평생회원으로 뇌호흡 수련을 취미와 특기삼아 즐기고 있음.
사진|김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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